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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2

jwlee 2015. 3. 11. 07:41

그녀는 아래에서 방석 두 개와 캔맥주 네 개, 그리고 기타를 가지고 왔다. 우리는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그녀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이런 짓을 하면 동네 사람들의 빈축을 사지 않겠느냐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동네에 불이 난 것을 구경하며 옥상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른다는 게, 그다지 올바른 행동이라곤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걱정할 거 없어, 뭐, 그런 거. 우리는 동네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있으니까." 하고 미도리가 말했다.


상실의 시대의 일부분인데, 이걸 읽고나니 참 맥주가 마시고싶다. 불구경하면서 맥주를 마시는 기분은 얼마나 좋을까. 화재가 난 집의 사정은 안타깝지만, 그런 것까지 생각하며 살기에는 무척이나 힘든 세상이니까.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 한다면, 나의 네번째 구매, 심지어 친구에게 부탁해서 한국에서 배송이 온 상실의 시대의 제본이 잘 못 되있는것도 무척이나 슬프다. 하지만 제본이 잘못되 30페이지 정도가 사라져있다니. 게다가 그 부분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도리와 만나는 부분이라니. 참 안타깝다.


하지만 뭐 그럴수도 있지 싶다. 세상은 마음먹은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


상실의 시대, 친구에게 부탁을 해, 특별히 영국에서 받았다.


벌써 열번은 족히 읽었지만, 매번 읽을수록 흥미롭다. 어떻게 이렇게 거부감없이 글이 흘러가는지. 마치 젤리같은 책이다. 정신없이 먹다보면 사라져있는.


이 책에서 내가 좋아하는 미도리라는 인물이 있다. 미도리가 하는 대사들과 성격이 너무 좋아서, 미도리가 나오는 파트를 많이 찾아보곤 한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무슨 수업에서 만나는 부분이 없어져있었다. 뭔가 내용이 이상해서 책을 잘 살펴보니 30페이지 정도가 제본이 잘못 되어 있었다.


그 30페이지 부분을 제외하고, 뒷부분이 두번이 제본되어 있었는데 무척이나 당황스러우면서도 재미있었다. 한권일지 여러권일지는 모르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의 오판인쇄라니. 희귀성도 있어보이고 말이야. 


내가 이렇게 제본이 되었다면, 그럼 또 다른 어떤 책은 내가 사라진 30페이지를 두번 가지고있겠지. 내가 두개 가지고있는 30페이지는 없고. 그 사람을 찾는게, 그런게 천생 연분을 찾는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