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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활

시험이 끝난 뒤

시험이 끝난 뒤, 라고 하니 '연극이 끝난 후' 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무척이나 좋아하는 노래인데, 음질을 떠나서 그 목소리와 가사의 절절함이 너무나 좋다. 이 노래가 1980년대 대학 가요제에 나왔는데, 내 나이도 훌쩍 넘은 노래를 좋아하고 듣고있노라니, 꼭 선생님을 좋아하는 학생같다.


몇일 전에 시험이 끝났다. 거의 한달에 걸친 시험기간이였고, 그중에 보름가량을 열심히 공부했다. 살면서 이렇게 공부해본적이 없을정도로 공부를 했다. 공부를 하면서 느낀점은, 공부가 엄청나게 재미있다는것이다. 사실 고등학교때는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던거 같다. 이것들 배워봤자 도데체 어디에다 써먹는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했던 과목은 수학과 과학이였고, 싫어했던 과목은 '사'자가 들어가는 사회, 국사 같은 과목들이였다.


나는 암기가 너무나 싫었다. 효율적인게 좋았고. 수학같은 과목은 한가지 공식을 이해하면, 한 단원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단원마다의 개연성이 있었고, 자유로운 응용이 좋았다. 1단원에서 배운것과 5단원에서 배운것을 합쳐서 문제를 낸다는게. 퍼즐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퍼즐같다고나 할까. 빠져있는 몇가지 조각을 찾아서 맞추는, 그런 느낌이였다. 하지만 그런 수학마져도, 도데체 이 과목을 살면서 어디에 써먹지? 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단지 재미있어서 조금 더 열심히 했을 뿐.


그리고 소비자 주거학이라는 전공으로 대학생이 되었을때. 새로운 과목들을 배웠다. 소비자학이라던지, 주거학, 또 무슨 과목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이것저것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 과목들이 충분히 활용 가능한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유는, 재미가 없었다. 흥미도 없고. 그리고 과목 자체가, 일이면 일, 에이면 에이였지, 그 이상의 무언가 가 없었던거 같다. 물론 과목 자체가 나한테 맞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군대가기 전이라 공부하기도 싫었다 그리고.


그리고 이렇게 유학을 와 국제경영을 전공으로 공부를 했다. 일학년 때에는 그저 패스하기 바빴는데, 이학년이 되고, 과목의 어려움을 느끼고, fail의 무서움을 느끼며 벼락치기를 해보니, 어허.. 이 과목들 참 재미있네 싶다. 삶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분석하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또한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까지 버무려져 만들어진 이론들과, 그 이론들 위로 싸여가는 지식과 경험들로 만들어진 이 과목들이 무척이나 재미있다. 그래서 처음으로 공부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해야겠다고도 생각했고.


개인적으로 항상 나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천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전을 안했다. 만약 도전해서 실패하거나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정신적 고통과 현실 직시를 하기가 무서워서. 그래서 무언가를 열심히 해본적이 없었다. 항상 나는 원래 포기가 빨라, 나는 하고싶은게 없어. 라고 변명하며 도망치기 바빴다. 하지만 이렇게 엄청나게 방대한 지식의 세계에 한 발자국 걸어들어가니, 신기하게도 두려움이 아니라 호기심과 흥미가 느껴진다. 이 학문의 끝은 어디일까? 과연 이걸 다 알고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같은. 이번 시험기간은 내 인생에 최고의 순간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을 오랫만에 쓰니까 어떻게 쓰는지도, 내가 무슨 말을 쓰고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것도 한걸음 한걸음씩 나가서 잘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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